대한민국 미술가 열전(39) 한영섭 편

수확을 마친 밭에서 들깨 줄기를 한 아름 집어와 작업실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한지를 덮은 뒤 먹물 바른 뭉치로 콕콕콕콕 쿵쿵쿵쿵 찍어댑니다. 들째 줄기의 흔적이 만들어낸 선들이 하나둘 종이 위에 새겨집니다. 이렇게 완성된 소박한 그림. 하지만 그 그림은 소박함을 뛰어넘는 자연의 무늬를 보여주죠. 탁본과 한지를 결합한 한영섭만의 독보적인 예술입니다.

2024년 여름, 두손갤러리에서 열린 한영섭의 개인전 <Infinite Relation>은 작가의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귀한 자리였습니다.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지금도 쉬지 않고 작업하는 어엿한 현역입니다. 한영섭의 예술이 온당하게 재평가되길 기대합니다.

다시, 한영섭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김석

한지 위에 탁본한 자연…두손갤러리 한영섭 개인전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38) 포 킴 편

해방과 전쟁의 질곡 속에서 갖은 고초를 겪다가 1955년 미국으로 훌쩍 떠난 화가 김보현. ‘세계 미술의 심장’ 뉴욕의 힘찬 예술적 박동과 호흡하며 ‘포 킴’이란 이름으로 활발하게 그림을 그려나갔고, 그 치열한 예술의 최전선에서 동서양의 미학을 융합했다는 찬사를 받습니다. 뉴욕의 1세대 한인 화가인 포 킴은 97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년을 꼬박 뉴욕에서 활동했죠. 그 때문에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이지만, 한국 미술사의 숨은 보석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2022년 학고재갤러리가 포 킴의 예술 세계를 소개하는 전시 <‘지상의 낙원’을 그리다 – 뉴욕의 한인화가 포 킴>을 열었습니다. 그가 꿈꾼 지상 낙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다시, 포 킴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팬데믹 넘어 '지상낙원'으로..뉴욕의 한인화가 포 킴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37) 곽훈 편

1960년대에 국내에서 잠시 활동하다 1975년 미국에 이민 간 곽훈 작가는 동양의 정서가 녹아든 작품으로 현지에서 먼저 주목받습니다. 이후 기(氣) 연작, 겁(劫) 연작을 잇달아 선보이며 해외 미술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 명성이 국내에도 알려져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처음으로 설치된 한국관 참여작가로 선정됐죠. 현대 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중요한 미술가 중 한 명입니다.

코로나 유행이 한창이던 2022년 여름,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곽훈 작가를 만났습니다. 최근 작가는 알래스카 이누이트족의 고래잡이를 소재로 한 할라잇(Halaayt) 연작으로 변함없는 노익장을 뽐내고 있습니다.

다시, 곽훈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생(生)의 근원을 찾아서..추상화가 곽훈의 40년 예술 여정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36) 조덕환 편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화가 조덕환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을 하고 돌아와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생전에 미술계와 밀접하게 교류하지도 않았고 전시회도 많이 열지 않은 까닭에 그의 존재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죠. 유족이 2024년 조덕환의 작품 191점을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했고, 이 뜻깊은 기증을 기념해 고인의 예술 세계를 돌아보는 회고전 <조덕환: 구상의 길을 걷다>가 열렸습니다.

조덕환은 6․25 전쟁 시기에 미국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한국을 찾은 아이젠하워와 이승만 대통령이 함께 있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우리 미술사에 조덕환이라는 이름이 남은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

이제, 조덕환의 예술을 만나봅니다.

故 조덕환 화백 작품 191점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35) 주명덕 편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적 풍경의 변화를 기록한 1960년대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크게 주목받은 주명덕 작가. 이후로 한국의 자연과 문화유산, 인물, 풍경을 담은 사진을 꾸준히 발표해 왔습니다. 1966년 홀트아동복지회 고아원에서 촬영한 사진 연작을 발표하며 사회적으로 큰 충격과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죠.

저는 2011년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사진전 <비록 아무것도 없을지라도>에서 작가를 처음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그때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연 우리 부모들이 살던 우리나라는 어떨까, 그 남아 있는 모습을 내가 보여줘야 되는, 봐야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죠.”

다시, 주명덕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미술관에서 만나는 우리 전통건축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34) 이만익 편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고 또 보통 시각 기능을 가진 사람이면 알아볼 수 있는 형상으로 그려서 정감의 교류가 이뤄진다면 일단 보는 사람도 그리는 사람도 서로 쉽지 않겠습니까?”

1994년 이만익 화백이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그래요. 이만익의 그림은 누가 봐도 어렵지 않습니다. 토속적인 소재, 단순하고 평면적인 구도, 정감 어린 표현. 파리 유학에서 돌아온 이만익 화백이 깨달은 건 우리의 역사, 우리의 정서, 우리의 뿌리를 화폭에 담자는 것이었습니다. 2022~2023년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은 이만익이라는 화가를 재조명하는 귀한 자리였습니다.

다시, 이만익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주말&문화] 한국인의 뿌리와 정서를 화폭에…화가 이만익의 예술세계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33) 김구림 편

2016년 3월 18일. 평일이었는데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야외 잔디밭에 꽤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한국 실험 미술의 선구자이자 원로인 김구림 작가의 이색 퍼포먼스가 재현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 한강 변에서 잔디를 태우는 놀라운 행위예술을 선보인 지 46년이 지나 팔순이 된 작가는 미술관 앞 잔디밭을 태우는 행위를 통해 삶과 죽음의 순환이라는 메시지를 새롭게 각인시켰죠.

한국 미술사의 한 장을 장식한 역사적인 퍼포먼스를 동시대에 직접 목격하고 기록할 수 있었다는 데 보람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작가 김구림은 여전히 현역입니다.

다시, 김구림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탄생과 소멸"..'잔디밭 태우기' 행위예술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32) 김윤신 편

지구 반대편의 먼 나라 아르헨티나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세운 최초의 한인 작가 김윤신. 2022년 7월 귀국 전에서 처음 만난 김윤신의 회화와 조각은 김윤신답다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작가만의 확고한 예술성과 개성을 보여줬습니다. 긴 해외 생활을 접고 영구 귀국한 작가는 이후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를 통해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으며 생의 만년에 화려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살아서 빛을 보지 못한 예술가가 얼마나 많은가요. 그런 의미에서 김윤신 작가의 성공은 더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2024년 프리즈 행사장에서도 김윤신 작가는 건재했습니다.

다시, 김윤신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찬란하여라! 지금 이 순간"..아르헨티나의 한인 작가 김윤신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31) 하종현 편

돌이켜 보니 한국의 단색화를 대표하는 여러 작가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하종현 작가도 그중 한 분입니다.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2022년 2월, 국제갤러리에서 마스크를 쓴 채 화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미군의 구호 물품을 담았던 마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하종현은 마대 뒷면에 물감을 두텁게 발라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내는 기법으로 ‘접합’이라는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열었습니다.

그 특유의 조형성은 지금 봐도 무척 신선합니다. 하종현의 작품이 아트페어와 경매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다시, 하종현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쉼 없이 진화하는 거장의 예술..'단색화 선구자' 하종현을 만나다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30) 김성환 편

고바우 영감 기억하십니까? 2010년 가을,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김성환 화백을 인터뷰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1960, 70년대 우리네 일상을 잔잔하게 그린 작품 90여 점이 전시장을 빼곡하게 채웠죠. 김성환 화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실에만 자꾸 매달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마음을 가다듬고 과거를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김성환의 그림이 가진 힘입니다.

만화가로 더 유명한 김성환 화백은 한국 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중요한 화가였습니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1950년 6.25 전쟁 스케치는 양과 질, 현장성 모든 면에서 한국 미술사의 보물입니다.

다시, 김성환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하늘로 떠난 '고바우 영감'..'시사만화 대부' 김성환 화백 별세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29) 최종태 편

최종태 작가를 처음 만난 건 2010년 3월, 서울 길상사였습니다. 열반에 든 법정스님의 법구가 길상사를 떠나 송광사로 향하던 그 날, 부고를 듣고 달려온 이들 중 한 사람이 바로 최종태 작가였죠. 길상사 입구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은 성모마리아를 닮았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최종태 작가에게 사찰 조각을 맡긴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보여준 법정스님의 큰마음이 담긴,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통섭과 화합으로 나아간 한국 종교사의 빛나는 상징입니다.

이듬해 가을, 가나아트센터 개인전에서 최종태 작가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후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종태 작가는 변함없는 현역입니다.

다시, 최종태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현대 조각의 거장 최종태 개인전 ‘새벽의 노래’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28) 정상화 편

2023년 6월,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추상회화 ‘단색화’의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정상화 작가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습니다. 미술기자로 일하면서 이런 기회를 얻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아흔을 넘긴 화가의 말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그 어떤 젊은이 못지않게 강력하더군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화가의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바보스러움, 거기에 뭐 없거든. 바보스러움이 결국에 말을 해줘요.” 그 바보스러움이 오늘의 정상화를 있게 한 것이었겠죠.

다시, 정상화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주말&문화] 단색의 화폭, 그 무한한 우주…‘고독한 수행자’ 정상화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27) 박서보 편

10여 년 전 박서보 화백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화가의 말을 들으면서 한국 미술사의 산증인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했죠. 한국의 단색화가 세계 미술시장에서 인정받으면서 박서보는 단색화의 대표 작가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단색화 계보의 다른 화가들보다 오래 산 덕분에 사는 동안 명예와 부를 모두 거머쥔 것은 화가에겐 더없이 큰 복이었습니다.

화가가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그 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을 담아 화가의 부고 기사를 썼습니다. 미술기자로서 화가의 마지막을 기록할 수 있었던 건 크나큰 영광이었습니다.

다시, 박서보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단색화’ 반석 위에 올린 거장…박서보 화백 별세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26) 윤중식 편

2022년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열린 윤중식 타계 10주기 추모전 <회향>은 윤중식이라는 화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뜻깊은 전시였습니다. 6.25 전쟁이 터지자 피란길에 오른 윤중식의 가족은 생이별과 죽음이라는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아들과 부산에 도착한 윤중식은 비극의 가족사와 전쟁의 참상을 그림으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이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 전쟁 드로잉 연작 28점입니다. 윤중식의 그림에 흐르는 공통된 정서는 바로 ‘그리움’입니다.

아들 윤대경 씨가 국립현대미술관과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한 아버지 윤중식 화백의 그림과 자료들은 한국 미술사를 빛내주는 귀중한 자산입니다.

다시, 윤중식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주말&문화] 거친 붓끝으로 드러낸 전쟁의 참상..6·25를 그리다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25) 서세옥 편

2016년 4월, 갤러리현대 전시장에서 서세옥 화백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고령으로 잘 듣지는 못했지만, 화가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자기 삶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제게 들려줬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화가의 말이 있습니다. “그늘지고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보살피고 이끌어주는 그 정신이 화가의 붓끝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런 화가를 만난 기억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화가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이 고인의 작품과 수집품 등 3천 2백여 점을 서울 성북구에 기증했습니다. 서세옥 미술관의 탄생을 기다립니다.

화가의 따듯한 시선 '사람 담은 수묵화'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24) 김창열 편

2022년 국내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화가 김창열의 일대기를 다뤘습니다. 1971년에 첫 번째 물방울을 그린 이후 단 한 번도 다른 걸 그린 적 없었던 화가 김창열. 아들 김요안 씨가 만든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화가가 그 고단한 생(生)의 여정에서 우연히 만난 한 점 물방울을 왜 평생토록 줄기차게 그렸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죠.

2016년 1월,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백남준 10주기 추모전에서 화가는 불편한 몸에도 기꺼이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퍼포먼스를 몸소 보여줬습니다. 제가 카메라에 담은 화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다시, 김창열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50년 동안 물방울만 그렸다"..화가 김창열은 왜?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23) 신순남 편

카레이스키의 후예인 한인 3세 화가 신순남. 1937년 아홉 살 나이에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이었던 그는 평생 우즈베키스탄 국민으로 살았지만, 죽는 날까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수난과 영광의 유민사 - 신순남전>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척박한 땅에서 삶을 일군 한인들의 수난의 역사를 새긴 신순남의 그림은 소재 자체는 물론 그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보적인 화풍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죠.

신순남이라는 화가의 존재를 제게 일러준 건 미술연구자 안민영의 <어느 쓸쓸한 그림 이야기>라는 책이었습니다.

신순남의 그림을 만나고 싶습니다.

[새로 나온 책] 정전 70년, 끝나지 않는 전쟁 ‘한국전쟁 전사’ 외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22) 정창섭 편

화강암처럼 단단하면서도 품위 있는 표면, 천연 안료 고유의 투명한 색감, 그리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절제의 미학. 화가 정창섭이 한평생 추구했던 한국미의 세계였습니다. 2022년 PKM 갤러리에서 열린 <정창섭 작품전 ‘물(物) 심(心)’>이 준 깊은 감동을 아직 잊지 못합니다.

정창섭은 광복 후 최초로 설립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교육받은 한국 현대미술 첫 세대입니다. 오랜 실험과 모색기를 거쳐 1970년대 중반 <귀(歸)> 연작을 기점으로 종이, 즉 ‘한지’에 주목했죠. 붓 대신 손으로 반죽을 매만지며 수행자처럼 바르고 눌러 화폭에 펼쳐냈습니다. 정창섭은 그렇게 독창적인 기법으로 보편적 감수성의 세계에 도달했습니다.

다시, 정창섭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주말&문화] 화폭에 빚은 명상의 미학..단색화 거장 정창섭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21) 원계홍 편

2023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그 너머 – 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은 원계홍이라는 낯선 화가의 진가를 확인시켜준 귀한 자리였습니다. 원계홍은 일본 유학 시절 경제학을 공부했고, 본업을 하면서 그림을 그려 미술계에 인맥이 없었습니다. 나이 쉰다섯에 첫 개인전을 열었을 정도로 생전에는 큰 빛을 못 봤죠. 하지만 도리어 그 덕분에 그 시대 화가들에게선 볼 수 없는 때 묻지 않은 조형 감각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원계홍은 ‘골목 화가’라는 수식어답게 주로 서울의 거리와 골목 풍경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꽤 많은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 보존될 수 있었던 건 일찍이 화가의 진면모를 알아본 두 소장가 덕분이었습니다.

다시, 원계홍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주말&문화] 때묻지 않은 ‘순수의 미학’…‘골목 화가’ 원계홍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20) 이억영 편

한평생 서울 풍경을 그린 대표적인 화가로 서양화에 최덕휴가 있다면, 동양화엔 이억영이 있습니다. 이억영은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 곳곳의 실경을 부지런히 사생한 풍경화가이자, 다양한 우리 세시풍속을 화폭에 담은 풍속화가였습니다. 특히 생전에 풍속화 187점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고, 이를 기념해 2003년 박물관에서 기증전이 열렸습니다. 이억영의 풍속화는 사진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시대를 증언하는 귀중한 시각 자료입니다.

2011년 여름, 서울 청계천문화관에서 열린 <창석 이억영, 서울의 실경산수> 전에서 화가의 서울 풍경화 40여 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이억영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청계천문화관서 故 이억영 화백 특별전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19) 권진규 편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근현대 미술품 가운데 대표작을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많은 분이 권진규의 <자소상>을 떠올리지 않을까 합니다. 권진규는 일본 유학 시절 조각가로서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정작 고국에 돌아와서는 철저하게 푸대접받습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던 날 아침, 권진규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바로 자신의 얼굴을 빚은 <자소상>이 있던 고려대학교 박물관이었다고 하죠.

우여곡절 끝에 권진규의 유족으로부터 작품과 자료를 기증받은 서울시립미술관이 남서울미술관 1층을 ‘권진규의 영원한 집’으로 꾸몄습니다.

다시, 권진규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주말&문화] 대동여지도부터 근현대 명작까지…대학 박물관에 이런 보물이?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18) 최덕휴 편

일제강점기에는 광복군으로 항일 전투에 뛰어들었고, 6․25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술교육연구회를 꾸려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교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 최덕휴 화백. 그는 한평생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의 산천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최덕휴는 특히 서울 전경을 파노라마 형식의 대작으로 그린 대표적인 화가로 꼽힙니다.

2011년 가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최덕휴 전>을 취재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아들 최희용 씨가 정성껏 꾸민 최덕휴 기념관 누리집(http://choidukhyu.org/)에 가면 화가의 삶과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다시, 최덕휴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광복군 출신 화가가 그려낸 대한민국의 성장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17) 박래현 편

2020년 한국 근대화단을 대표하는 여성 화가 박래현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박래현, 삼중통역자>는 박래현이라는 뛰어난 화가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전시였습니다. 남편인 운보 김기창 화백의 명성에 가려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면이 없지 않지만, 박래현이 보여준 예술적 스펙트럼을 보면 김기창과 차별화된, 어떤 면에선 김기창을 넘어선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예술가였음을 알게 됩니다.

저는 2023년 3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박생광, 박래현 전을 통해 박래현이라는 화가의 진가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박래현의 작품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봐도 전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현대적 감각을 보여줍니다.

다시, 박래현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주말&문화] 찬란한 색채 vs 혁신의 미학…한국화 대가의 만남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16) 김병기 편

100살이 되던 해에 국내 최고령 전시회를 열어 화제가 됐던 김병기 화가는 추상 미술 1세대로 우리 현대미술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한 선구자로 평가됩니다. 특히 100살이 넘도록 장수한 덕분에 초등학교 동창이자 일본 문화학원 동문이었던 화가 이중섭에 관한 가장 믿음직한 증언자 역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2016년 봄, 가나아트 전시 때 화가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던 경험을 잊을 수 없습니다. 화가는 죽을 때까지 화가일 수밖에 없음을 감동적으로 보여준 김병기 화백은 100살이던 그때도 캔버스 앞에서 붓을 들었죠.

다시, 김병기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100세 맞아 '최고령 전시회' 여는 노화가의 창작열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15) 전혁림 편

경남 통영 출신 화가 전혁림은 통영에 머물던 일본인 아마추어 화가에게 그림을 배운 뒤 독학으로 화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중년 이후 고향에 정착해 통영의 바다와 주변 풍경, 옛 물건과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아 오방색을 중심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조형 세계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기도 합니다.

전혁림 탄생 100주년을 맞아 2015년, 경기도 용인시 이영미술관에서 성대한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이 전시에 출품된 <새 만다라>는 가로, 세로 20cm짜리 정사각형 나무 함지 1,050개를 이어 완성한 것으로, 화가가 생전에 대표작으로 꼽은 필생의 역작입니다.

다시, 전혁림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한국의 피카소' 전혁림 100주년 기념전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14) 변월룡 편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한 고려인 화가의 탄생 100주년 기념 회고전이 미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변월룡. 연해주에서 태어난 러시아 화가로 1953년 북한을 방문해 북한 미술의 토대를 세웠지만 이후 정치적 이유로 입국이 거부됐고, 남쪽에선 그 존재조차 몰랐던 ‘숨은 거장’입니다.

변월룡은 고려인으론 사상 최초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당대 최고의 예술학교 레핀 예술대학에 입학했고, 1951년에는 예술학 박사 학위를 따 이 대학의 조교수가 됩니다. 정식 화가가 된 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이 모두가 고려인으로는 '최초'의 기록이었습니다.

다시, 변월룡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냉전에 가려진 '숨은 거장' 변월룡을 만나다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13) 임군홍 편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봄의 스케치>로 입선하며 화가가 된 임군홍. 전문적인 미술교육은 못 받았지만, 중국과 한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며 독학으로 그림을 익혀 자기만의 화풍을 일궜습니다. 임군홍은 1940년대에 자금성을 비롯한 중국 풍경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이념 시비에 휘말려 넉 달간 수감생활을 했고, 이로 인해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월북합니다. 다행히 유족이 작품을 처분하지 않고 지금껏 고이 간직해온 덕분에 2023년 8월 예화랑에서 열린 <정전 50주년 기념전  ‘화가 임군홍’>을 통해 임군홍 그림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임군홍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주말&문화] ‘망각의 화가’ 임군홍을 아십니까?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12) 박생광 편

일본화의 영향이 짙은 화풍을 보여주던 박생광 화백이 1980년대 들어 일본풍을 극복하고 독자적인 양식을 이룩한 것은 한국 미술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예외적인 사례로 평가됩니다. 박생광은 화가 인생의 만년인 1980년 이후에야 화단에서 비로소 인정받았고, 1985년 작고하기까지 불과 5~6년 사이에 화가로서 절정기를 보냈습니다. <명성황후>, <전봉준> 등 걸작이 이 시기에 탄생했죠.

1981년 인터뷰에서 화가는 말했습니다. 차원 높은 좋은 한국화를 그리는 것이 평생에 단 하나의 과제였다고. 박생광은 우리 전통 단청 색에서 답을 찾았고, 우리 것을 찾아 잇겠다는 일념으로 한국 채색화의 새 지평을 활짝 열었습니다.

다시, 박생광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11) 나혜석 편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돌아와 국내에서 첫 서양화 개인전을 연 나혜석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첫 서양화가입니다. 일찍이 세계 일주를 감행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이었지만, 파리 시절 최린과의 염문이 세상에 알려지며 남편 김우영과 이혼한 이후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불우한 여생을 보내야 했죠.

안타까운 건 전해지는 나혜석의 작품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수원시립미술관이 나혜석의 <자화상>을 비롯한 작품과 사진 자료 등을 꾸준히 수집해 왔지만, 남아 있는 작품의 수량도 적고 좋은 작품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이따금 전시회에 나오는 나혜석의 작품은 그 자체로 귀합니다.

다시, 나혜석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미술과 함께 40년…가나아트가 선택한 명작들

대한민국 미술가 열전(10) 김관호 편

한국인이 서양화 기법으로 그린 최초의 누드화 <해질녘>. 고희동에 이어 두 번째로 일본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한 김관호가 졸업하던 해 일본 문부성미술전람회에서 이 그림으로 특선을 차지하며 엄청난 화제가 됐죠.

<해질녘>과 더불어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할 때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했던 김관호의 <자화상>이 2020년 1월,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한국근현대인물화: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 전에 나란히 걸렸습니다.
 
다시, 김관호의 예술을 돌아봅니다.

김석 기자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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